감정 기록은 감정을 없애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감정을 기록했는데도 화나고 불안한 마음이 그대로라면 기록은 실패한 걸까요? 감정 자체와 그 감정을 느끼는 자신에 대한 판단을 구분하는 기록에 대해 살펴봅니다.
감정 기록은 감정을 없애기 위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 때문에 기분이 상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화가 가라앉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나를 기분 나쁘게 만든 상황도 싫지만, 그 일을 계속 마음에 담아두고 화를 내는 자신의 모습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불안한 일이 생긴 것만으로도 힘든데, 좀처럼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까지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질투가 나면 그런 마음을 품은 자신이 부끄럽고, 지쳤을 때는 이 정도도 견디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분명 어떤 일 때문에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감정을 떨쳐내지 못하는 자신까지 평가하기 시작합니다.
“이 정도 일은 그냥 넘겨야 하는데.”
“왜 아직도 화가 나지?”
“이제는 괜찮아질 때도 됐는데.”
감정 위에 그 감정을 느끼는 자신에 대한 평가가 하나 더해진 것입니다.
감정을 기록할 때도 비슷한 일이 생깁니다. 마음을 적었으니 전보다 편안해져야 하고, 감정의 이유를 알았으니 이제는 그만 털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기대합니다.
그래서 기록을 마친 뒤에도 화나 서운함이 남아 있으면 제대로 기록하지 못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감정 기록의 목적은 모든 감정을 그 자리에서 없애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이번 글에서 나눠보려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지금 실제로 느끼고 있는 감정과, 그런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입니다.
지난 글에서는 감정을 이해하려고 들여다보는 일과 같은 생각을 계속 곱씹는 일의 차이를 살펴봤습니다. 이번에는 그다음 질문을 이어가려 합니다.
감정이 아직 남아 있어도, 그 기록은 충분한 기록일까요?
감정과 자신에 대한 평가가 뒤섞일 때
가까운 사람에게 어렵게 속마음을 꺼냈는데, “너무 생각하지 마”라는 답을 들었다고 해보겠습니다.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어서 마음이 상했습니다. 조금 더 들여다보니 단순히 기분이 나빴던 것이 아니라, 내 이야기가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같아 서운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그래도 서운함은 바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미 들은 말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감정의 이유를 알았다고 해서 마음이 곧바로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입니다.
“그 사람도 나쁜 뜻으로 말한 건 아닐 텐데.”
“이 정도 말에 계속 서운해하는 내가 너무 예민한가?”
“이제는 그냥 넘겨야 하는 것 아닌가?”
처음에는 상대방의 말 때문에 서운했습니다. 이제는 서운함을 떨쳐내지 못하는 자신까지 못마땅해집니다.
이때 마음속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가 함께 있습니다.
하나는 “나는 서운하다”는 감정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 정도 일로 서운해하는 나는 너무 예민하다”는 자신에 대한 평가입니다.
두 문장은 비슷하게 들리지만 같은 말은 아닙니다.
서운함은 지금 내 안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감정입니다. 반면 “이런 일로 서운해하면 안 된다”는 말은 그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판단하는 생각입니다.
감정을 기록하면서도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면, 기록은 마음을 살펴보는 시간이 아니라 감정을 빨리 없애지 못한 자신을 심사하는 시간이 되기 쉽습니다.
불편한 감정과 그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는 서로 이어질 수 있다
불편한 감정과 그 감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태도의 관계를 일상에서 살펴본 연구가 있습니다.
심리학자 나타샤 베일런 연구팀은 미국과 호주의 18세에서 40세 사이 여성 187명에게 5일 동안 하루 14차례씩 현재의 감정과 그 감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도를 기록하게 했습니다.
불편한 감정이 강한 순간에는 그 감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정도도 높았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함께 살펴보니 두 경험이 서로 이어지는 경향도 나타났습니다.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순간 뒤에는 불편한 감정이 더 강해지는 경향이 있었고, 반대로 불편한 감정이 강했던 순간 뒤에는 그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도 높아졌습니다.
한쪽이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불편한 감정과 그 감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태도가 서로 이어지는 모습이 관찰된 것입니다.
일상적인 말로 옮기면 이런 흐름입니다.
처음에는 불안한 일이 생겨 마음이 흔들립니다. 곧이어 “불안하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따라옵니다. 시간이 지나도 불안이 사라지지 않으면, 이제는 계속 불안해하는 자신까지 답답해집니다.
처음의 불안에 자기비난이 하나 더해진 것입니다.
화가 난 상황도 비슷합니다. 누군가의 말 때문에 화가 났는데, 곧 “이 정도 일로 화를 내는 내가 싫다”는 생각이 따라옵니다. 화가 가라앉지 않으면 자신에게 다시 짜증이 납니다.
이 연구는 18세에서 40세 사이의 여성만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흐름이 나타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감정이 힘든 상황에서, 그 감정을 느끼는 자신까지 못마땅하게 여기면 마음에 또 다른 부담이 더해질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됩니다.
감정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심리학에서는 지금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곧바로 판단하거나 바꾸려 하지 않고 경험하는 태도를 감정 수용(emotional acceptance)이라는 개념으로 다뤄왔습니다.
여기서 ‘수용한다’는 말은 감정을 좋다고 평가하거나, 그 감정이 언제나 옳다고 인정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화가 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상대방의 행동이 옳았다고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불안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걱정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질 것이라고 믿는 것도 아닙니다.
서운함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관계를 포기하거나 모든 상황을 참겠다는 뜻도 아닙니다.
감정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우선 지금 느끼는 감정을 사실대로 확인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가까운 사람의 말을 듣고 서운했다면, “나는 그 말을 듣고 서운했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아직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면, 괜찮은 척하기보다 “지금도 서운함이 남아 있다”고 적을 수 있습니다.
감정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과, 감정이 들려주는 모든 해석을 사실로 믿는 것은 다릅니다.
“나는 지금 버려질까 봐 불안하다”는 감정은 실제로 느끼고 있는 경험입니다. 그렇다고 누군가가 정말로 나를 떠날 것이라는 결론까지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지금 화가 난다”는 사실도 인정할 수 있습니다. 화가 났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곧바로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관계를 끝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감정이 있다는 사실과, 그 감정을 따라 무엇을 할지는 나눠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과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
감정 수용을 이야기할 때 특히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과, 나에게 일어난 상황을 괜찮은 일로 받아들이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심리학자 브렛 포드 연구팀은 사람들이 불편한 감정과 생각을 판단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스트레스 상황에서 어떤 차이와 함께 나타나는지 살펴봤습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비교적 잘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불쾌감이나 불안, 슬픔 같은 감정에 비교적 덜 크게 휩쓸리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이런 감정에 덜 휩쓸렸던 사람들은 6개월 뒤에도 불안이나 우울감 같은 심리적 어려움이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었습니다.
이 결과가 감정을 받아들이면 반드시 마음이 건강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연구에서 관찰된 것은 감정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스트레스 상황에서 느낀 감정, 그리고 이후의 심리 상태가 서로 이어지는 흐름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연구팀이 두 가지를 따로 살펴봤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그 상황에서 생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받아들이는 태도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스트레스를 일으킨 상황 자체를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는 태도였습니다.
심리적으로 비교적 안정된 상태와 더 분명하게 이어진 것은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아니라, 그 상황에서 생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인정하는 태도였습니다.
가령 직장에서 부당한 말을 들었다면, 그 상황과 내 감정을 이렇게 나눠볼 수 있습니다.
그 말은 부당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화가 났다.
두 문장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상황을 잘못됐다고 판단하면서도, 그때 화가 난 자신까지 잘못됐다고 몰아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화가 났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부당한 상황을 그대로 참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 말은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다.
동시에 지금 내가 화가 났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감정을 받아들이는 일과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지금 무엇을 느끼는지 인정하면서도, 그 상황에서 무엇을 할지는 따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같은 일을 적어도 자신을 심사할 수도, 감정을 살펴볼 수도 있다
감정 기록에서는 무엇을 적었는지만큼 어떤 태도로 적었는지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화가 난 일을 이렇게 적을 수 있습니다.
오늘 들은 말 때문에 아직도 화가 난다.
이 정도 일도 넘기지 못하는 걸 보면 내가 너무 예민한 것 같다.
화를 빨리 정리하지 못하는 내가 답답하다.
나는 왜 늘 이럴까.
이 기록은 화가 났다는 사실만 적고 있지 않습니다.
화가 계속 남아 있는 자신이 지나치게 예민한 것은 아닌지, 감정을 빨리 정리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계속 판단하고 있습니다.
기록의 중심이 화를 느낀 이유에서, 화를 느끼고 있는 자신에 대한 평가로 옮겨간 것입니다.
같은 일을 다르게 적어볼 수도 있습니다.
오늘 들은 말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무시당한 느낌이 들어서 화가 난 것 같다.
지금도 화가 조금 남아 있다.
지금은 이 화 때문에 나 자신까지 몰아붙이지 않겠다.
두 번째 기록에서도 화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거나 좋은 의미를 찾아내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지금 남아 있는 감정을 확인하고, 화가 남아 있다는 이유로 자신까지 공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글쓰기 과정에서 감정을 평가하는 태도와 받아들이는 태도를 직접 비교한 실험도 있습니다.
심리학자 카리사 로우 연구팀은 81명의 참여자에게 현재 겪고 있는 스트레스 경험을 두 차례에 걸쳐 쓰게 했습니다.
한 집단은 자신이 느낀 감정이 적절한지 평가하며 글을 썼고, 다른 집단은 감정을 판단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썼습니다. 나머지 집단은 감정보다 사건의 객관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적었습니다.
감정을 평가하며 쓴 집단은 감정을 받아들이며 쓴 집단보다 글쓰기가 끝난 뒤에도 몸의 긴장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심박수가 평소 수준으로 돌아오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린 것입니다.
같은 스트레스 경험을 두 번째로 적을 때도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감정을 받아들이며 쓴 사람들은 처음 쓸 때보다 몸의 긴장이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지만, 감정을 평가하며 쓴 사람들에게서는 이런 변화가 상대적으로 작았습니다.
쉽게 말하면 감정을 평가하며 쓴 사람들은 글을 마친 뒤에도 몸의 긴장이 더디게 가라앉았고, 같은 경험을 다시 적을 때도 긴장이 충분히 줄어들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 한 실험을 모든 감정 기록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참여자도 81명으로 많지 않았고, 연구에서 측정한 결과 역시 주관적인 편안함이 아니라 심박수의 변화였습니다.
그래도 무엇을 얼마나 길게 적었는지만이 감정 기록의 전부는 아닐 수 있다는 단서를 남깁니다.
“내가 이런 감정을 느껴도 되는가”를 계속 따지며 쓰는 것과, “지금 이런 감정이 있다”고 확인하며 쓰는 것은 같은 기록이 아닙니다.
감정을 받아들이는 기록은 감정을 아름답게 정리하지 않는다
감정을 받아들이는 기록이라고 해서 다정하고 차분한 문장만 써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짜 너무 짜증 난다.”
“아직도 생각하면 화가 난다.”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이런 문장으로 시작해도 괜찮습니다.
감정을 받아들이는 기록과 그렇지 않은 기록의 차이는 감정을 얼마나 부드럽게 표현했는지가 아닙니다.
그 감정 때문에 자신까지 공격하고 있는지, 지금의 감정과 그 감정을 느끼는 자신에 대한 평가를 구분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화가 난다.
그러면 안 되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보다,
화가 난다.
지금은 이 화가 남아 있다는 것까지만 알겠다.
라고 적어볼 수 있습니다.
불안을 적을 때도 억지로 희망적인 결론을 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내일 결과가 걱정된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보려고 했는데 잘되지 않는다.
아직 불안하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적겠다.
감정 기록은 반드시 긍정적인 문장으로 끝나야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다.”
“덕분에 성장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이런 의미를 정말 느꼈다면 적을 수 있습니다. 아직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서둘러 만들어내지 않아도 됩니다.
감정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적은 채로도 기록은 끝날 수 있습니다.
감정과 자신에 대한 평가를 나눠 적어보기
감정을 적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이 마음을 어떻게 없애지?”라는 질문으로 향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해결 방법을 찾기 전에, 지금 실제로 느끼는 감정부터 남겨볼 수 있습니다.
화가 있는지, 몸이 지쳤는지, 불안과 기대가 함께 있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그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불안하면 안 된다.”
“질투하는 나는 나쁘다.”
“이제는 괜찮아져야 한다.”
이런 문장이 보인다면 감정과 자신에 대한 평가를 나눠 적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불안하다.
그리고 계속 불안해하는 자신을 답답하게 여기고 있다.
나는 지금 질투를 느낀다.
동시에 이런 감정을 느끼는 나를 나쁜 사람처럼 여기고 있다.
원래의 감정을 당장 없애지 못해도, 그 감정과 자신에 대한 평가가 서로 다른 것이라는 점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감정과 행동도 나눠볼 수 있습니다.
화가 났다는 사실은 인정하되, 화가 가장 크게 올라온 순간에 상대방에게 상처 주는 말을 쏟아내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마음이 조금 가라앉은 뒤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다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외롭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아무 관계나 붙잡기보다, 내가 누구와 어떤 연결을 원하는지 돌아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면 결론을 만들지 않아도 됩니다.
서운하다는 것까지 알았다.
아직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르겠다.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감정을 알아차리는 기록은 이렇게 미완성인 채로 끝날 수 있습니다.
감정이 남아 있어도 기록은 끝날 수 있다
이번 글에서 말하려는 것은 모든 감정을 억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감정을 기록하는 동안만큼은 그 감정을 빨리 없애려 하거나, 그런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곧바로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감정을 알아차리는 일과 감정을 없애는 일은 다릅니다.
감정의 이름을 알게 됐어도 마음은 여전히 무거울 수 있습니다. 그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비난하지 않기로 했어도 불편함은 남습니다.
그렇다고 기록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왜 아직도 이러지?”라고 자신을 몰아붙이던 자리에서, “아직 이런 마음이 남아 있구나”라고 바라보는 자리로 조금 이동했을 수 있습니다.
“나는 화가 난다”와 “화내는 나는 나쁘다”가 서로 다른 문장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불안하다”와 “이제는 괜찮아져야 한다”를 나눠봤을 수도 있습니다.
감정의 크기가 바로 줄지 않아도, 감정과 자신을 대하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감정 기록의 목적은 감정을 빨리 없애는 데 있지 않습니다.
지금 어떤 감정이 있는지 확인하고, 그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데 있습니다.
아직 서운하다.
아직 화가 난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남긴다.
이렇게 끝난 기록도 충분합니다.
감정을 해결하지 못한 기록이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감정과 자신에 대한 판단을 나눠본 기록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조건이 남습니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적으려면, 적어도 기록하는 동안에는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누가 읽을지 걱정하는 순간, 우리는 감정뿐 아니라 문장과 결론까지 편집하기 시작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질문을 이어가려 합니다.
감정 기록은 왜 사적인 공간이 필요할까요?
Daily-ONVE는 기록한 뒤 기분이 나아졌는지 묻지 않습니다. 오늘의 감정과 그 감정을 느끼는 자신에 대한 생각을, 지금 보이는 만큼만 나눠 남길 수 있는 기록을 제안합니다.
참고한 연구
- Ford, B. Q., Lam, P., John, O. P., & Mauss, I. B. (2018). The psychological health benefits of accepting negative emotions and thoughts: Laboratory, diary, and longitudinal evidenc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15(6), 1075–1092. https://doi.org/10.1037/pspp0000157
- Bailen, N. H., Koval, P., Strube, M., Haslam, N., & Thompson, R. J. (2022). Negative emotion and nonacceptance of emotion in daily life. Emotion, 22(5), 992–1003. https://doi.org/10.1037/emo0000898
- Low, C. A., Stanton, A. L., & Bower, J. E. (2008). Effects of acceptance-oriented versus evaluative emotional processing on heart rate recovery and habituation. Emotion, 8(3), 419–424. https://doi.org/10.1037/1528-3542.8.3.419